남미 여행 21-2일차(2023.11.26), 이스터 섬 일주 full day tour

이스터 섬 2일차 이스터 섬 일주 full day tour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의 일출을 보고 휴식을 취한 후
이스터 섬 유적지를 일주하는 full day tour를 하려는데 기상이 악화됐다.
당초 10:30에서 11:00로 1차 연기, 결국 12:00에 심한 비바람 속에 출발했다.

이스터 섬에서 가장 큰 백사장이 있는 아름다운 아나케나 해변의
아후 나우 나우(Ahu Nau Nau) 모아이 석상, 테 피토 쿠라(Te Pito Kura)의 둥근 돌,
라노 라라쿠(Rano Raraku)의 모아이 채석장, 아후 아키비( Ahu Akivi)의 모아이 석상,

아나 테 파후(Ana Te Pahu) 초기 유적지, 오롱고(Orongo)에 있는
라노 카우(Rano Kau) 분화구 등을 둘러봤다.

이스터 섬,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 유적지 탐방

현지 가이드가 12시에 숙소 앞에서 픽업하러 와서 출발했다.
비바람이 심하게 불어 가이드조차도 어느 유적지를 먼저 가야할지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full day tour가 반나절 투어로 줄어들어 핵심적인 곳을 가기로 상의했다.

이스터 섬 북쪽으로 가는 길에 비바람 속에 아후 아카항가(Ahu Akahanga) 유적지를 먼저 들렀다.
아후 아카항가의 모아이 석상들은 대부분 쓰러져 있는 상태로

이 석상들이 왜 쓰러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섬 내 분쟁이나 자연 재해, 또는 종교적, 사회적 변화로 인한 것일 수 있다.

이곳은 라파 누이의 첫 번째 왕인 호투 마투아(Hotu Matu’a)가 사망한 곳으로 전해지며,
그의 무덤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이스터 섬의 아름다운 백사장, 아나케나 해변(Anakena Beach)

이어서 이스터 섬 북쪽의 아나케나 해변(Anakena Beach)으로 갔다.
아나케나 해변 입구에 있는 전통 가게다.

이스터 섬에 있는 몇 개 안되는 모래 해수욕장이다.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쳐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아나케나 해변은 이스터 섬의 북쪽 해안에 위치한 아름다운 백사장 해변으로
중요한 역사적 및 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나케나 해변은 이스터 섬의 전설적인 첫 번째 정착지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폴리네시아의 항해자이자 이스터 섬의 창시자인
호투 마투아(Hotu Matu’a) 왕이 처음 이 해변에 상륙했다고 한다.

이스터 섬, 아후 나우 나우(Ahu Nau Nau)의 모아이 석상

아나케나 해변의 아후 나우 나우(Ahu Nau Nau)에는 7개의 모아이 석상이 세워져 있다.
그 중 4개는 푸카오를 쓰고 있다.
아후 나우 나우에 있는 모아이 석상의 푸카오(Pukao)는 10톤까지 나간다.

푸카오는 붉은색 화산암으로 만들어졌으며,
모아이의 머리 위에 올려져 있는 큰 원통형 장식물이다.

모아이 석상들은 라파누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종교적, 사회적 상징으로,
조상들의 영혼을 기리고 마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라파누이 사회는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있었고, 부족 간의 갈등이 빈번했다.

내전이 벌어지면서 상대 부족의 상징이자 권위를 나타내는
모아이 석상들을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했다.

적의 신성한 보호자를 무너뜨림으로써 상대 부족의 권위와 힘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었다.

산림 벌채와 토양 침식 등으로 인해 섬의 생태계가 파괴되었고,
이는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아나케나 해변 쪽에서 바라 본 아후 나우 나우 후면부다.

1978년 고고학자 세바스티안 엥글러트(Sebastian Englert)의 주도로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스터 섬, 아후 아투레 후키(Ahu Ature Huki)

이 모아이 석상의 이름은 아후 아투레 후키(Ahu Ature Huki)다.
아후 아투레 후키는 앉아 있는 독특한 자세로 조각되어 있다.

다른 모아이들이 서 있는 형태인 반면,
아후 아투레 후키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조각되었다.

아후 아투레 후키는 풍부한 문화유산과 라파누이 조각가들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 독특한 모아이는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라파누이 사람들의 역사와 종교적 믿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모아이는 얼굴이 더 둥글고 다른 모아이들에 비해 인간적인 특징이 더 두드러진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모아이 조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제작했다.
이들은 주로 석조 조각, 목조 조각, 패턴화된 문양 등을 만들었다.

이러한 예술 작품은 사회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라파누이 사람들의 독창성과 창의성을 나타낸다.

이스터 섬, 테 피토 쿠라(Te Pito Kura) 유적지

이스터 섬의 테 피토 쿠라(Te Pito Kura) 유적지다.

중심에 있는 큰 구형 돌은 신성한 돌로 여겨지며,
‘Te Pito o Te Henua'(세상의 배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터 섬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라파누이 사람들의 믿음을 의한다.

이 돌은 폴리네시아 항해자인 호투 마투아 왕이 섬으로 가져왔다는 전설이 있다.
돌은 자석 성질을 지니고 있어 방문객들이 나침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중심 돌 주변의 작은 구형 돌들도 신성한 의미를 지니며,
함께 특별한 에너지를 공유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스터 섬 모아이들의 고향, 라노 라라쿠(Rano Raraku) 채석장 1

라노 라라쿠(Rano Raraku)는 이스터 섬의 동쪽에 위치한 화산 분화구로,
이곳은 고대 라파누이 사람들이 모아이 석상을 조각한 주요 채석장이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은 약 1000년 전부터 17세기까지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이곳은 모아이 석상들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장소로,
모아이들의 기원이자 제작 과정의 중심지이다.

라노 라라쿠는 이스터 섬의 문화와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모아이 석상들이 조각된 장소로, 섬 전체의 종교적, 사회적 중심지였다.

모아이 석상들은 라파누이 사람들의 조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그들의 신성한 존재를 상징했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의 모아이들은 이스터 섬의 문화와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라노 라라쿠는 모아이 석상들의 제작 과정과 기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지이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는 완성되지 않은 모아이 석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많은 모아이 석상들이 바위에서 절단되기 전 상태로 남아 있다.

이는 조각 과정 중에 기술적 어려움이나 자원 부족,
작업자의 사망 등으로 인해 작업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모아이 석상들은 채석장에서 절단된 후 운반 도중에 문제가 발생해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운반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 손상이나 사고로 인해 이동이 중단되었다.

라파누이 사회의 종교적 및 사회적 변화로 인해 모아이 조각과 운반 작업이 중단된 경우도 있다.

외부와의 접촉이나 내부적 갈등, 자원 고갈 등이 이러한 변화를 초래했다.

채석장에는 조각 도구와 작업 흔적들이 남아 있어,
모아이 조각의 세부 과정과 기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라노 라라쿠는 라파누이 문화의 중요한 유산으로,
이곳의 모아이 석상들은 라파누이 사람들의 신앙과 사회 구조를 반영했다.

라노 라라쿠에는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모아이 석상들이 있다.
가장 큰 모아이는 높이가 21미터에 달하며,
완성되었을 경우 약 27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라노 라라쿠 분화구 채석장과 모아이 석상들..

라파누이 사람들의 뛰어난 조각 기술과 천문학적 지식을 반영하는
이 모아이들은 조상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이스터 섬 모아이들의 고향, 라노 라라쿠(Rano Raraku) 채석장 2

모아이를 조각하다가 중단된 바위다.

이 모아이들은 정교하게 조각된 얼굴이 특색이다.

이 모아이는 전형적인 라파누이 스타일로, 두드러진 눈썹, 긴 코, 그리고 돌출된 입술이 특징이다.
눈 부분이 깊이 파여 있어 강한 인상을 주며, 섬세한 조각 디테일이 돋보인다.

모아이 석상 중 일부는 배나 등에 다양한 문양이나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 사진 속 모아이의 등에는 배(선박) 모양이 새겨져 있다.

특히 선박 문양은 이들의 해양 문화를 상징하며, 바다와의 깊은 관계를 나타낸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서 이스터 각 지의 아후(제단)까지 운반된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나무 썰매 설은 모아이를 나무 썰매나 롤러 위에 올려 굴려서 운반했다고 주장한다.

썰매 및 롤러 설은 나무 썰매 위에 모아이를 올리고,
원통형 롤러를 사용해 굴려서 운반했다는 방식이다.

걷는 석상 설은 모아이를 밧줄로 묶어 양쪽에서 흔들어 앞으로 걷게 했다는 설이다.
다수설이 걷는 석상 설이긴 하나, 각 설은 자원 사용과 인력 측면에서 장단점이 있다.

‘모아이 파라오(Moai Paro)’다.
이 모아이는 다른 모아이들에 비해 특히 키가 크고,
얼굴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날렵한 얼굴과 긴 코, 그리고 신체의 윤곽이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 모아이는 약 10미터 이상의 높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서 발견된 모아이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다.

모아이 투쿠투리 (Moai Tukuturi)다.
이 모아이는 다른 모아이들과는 달리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자세로,
라파누이 문화에서 특별한 의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모아이 투쿠투리는 독특하게 앉아 있는 자세를 하고 있으며,
일반적인 모아이들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고,
얼굴이 더 둥글고 신체의 비율이 다르다.

Rano Raraku 채석장에서 흐린 날씨 속에 새벽에 일출을 보러 다녀왔던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가 내려다 보인다.

바다를 향한 아후 아키비( Ahu Akivi)의 7개 모아이 석상

아후 아키비( Ahu Akivi)의 7개 모아이 석상들이다.
아후 아키비는 이스터 섬 내륙에 위치한 유적지로,
다른 모아이 석상들과는 달리 독특하게도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아이 석상들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모아이 석상들은 섬의 내륙을 향하고 있지만,
아후 아키비의 모아이들은 바다를 향하고 있다.
아후 아키비가 항해자들을 위한 천문학적 관측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후 아키비에는 7개의 모아이 석상이 일렬로 서 있다.
아후 아키비의 7개의 모아이 석상은 춘분과 추분에 맞춰져 있다고 한다.
이 석상들은 각각 태양이 춘분과 추분에 지평선에 떠오르는 위치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

이 정렬은 라파누이 사람들이 천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춘분과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로,
농업과 종교적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모아이들은 모두 거의 동일한 크기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이는 약 4.5미터, 무게는 약 18톤에 달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7개의 모아이는 이스터 섬을 발견한
7명의 탐험가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들은 섬의 첫 정착민이 되기 전,
왕의 명을 받아 먼저 섬을 탐험한 인물들로 여겨진다.

이스터 섬, 아나 테 파우(Ana Te Pahu) 유적지

아나 테 파우(Ana Te Pahu)는 용암 동굴 중 하나로,
과거 라파누이 사람들이 생활하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던 장소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는 용암이 흘러가면서 만들어진 동굴이다.
이 천연 용암 동굴은 화산 활동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으며,

과거 라파누이 사람들이 생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동굴 내부는 크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 동굴 내부에서는
주거지, 저장고, 피난처 등으로 사용된 흔적이 발견됐다.

동굴 내부는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식량 저장에 적합했다.
이를 통해 라파누이 사람들은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 주변에는 라파누이 사람들이 경작했던 농경지의 흔적도 발견됐다.
동굴 입구와 주변 지역은 비옥한 토양을 가지고 있어 작물 재배에 유리했다.
이곳에서는 바나나, 감자, 고구마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었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는 단순한 생활 공간을 넘어 의례적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라파누이 사람들은 동굴 내부에서 의례나 종교적인 행사를 진행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동굴 내부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들은 이곳이 중요한 의례적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라파누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다.

아나 테 파우(Ana Te Pahu)의 동굴 내부를 탐험하면서,
과거 라파누이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직접 느낄 수 있다.

라파누이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이 섬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생존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오롱고(Orongo) 지역 라노 카우(Rano Kau) 분화구

라노 카우(Rano Kau) 분화구다.
저 너머가 태평양이다.

잔뜩 흐려있고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오롱고 유적지 미방문에 대한 아쉬움

라노 카우 분화구를 보고 오롱고(Orongo) 유적으로 이동했는데,
18:00가 넘어 문이 닫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악천후를 핑계 삼아 투어를 늦게 시작하다 보니
일과가 끝나버려 들어갈 수 없어 너무 아쉬웠다.
호스텔에서 단체 투어 팀은 아침 일찍 정상적으로 출발했는데,
현지 가이드가 게으름을 피우는 인상이 짙었다.

현지 가이드는 투어 중에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굉장히 많았다.
쓸데없는 말이 많고, 차량이 지저분하고, 운전이 과격하고,
유적지에서도 자기 볼일 보느라 가이드 역할에 충실하지 않았다.

유적지 이동 중에 이유 없이 차량을 멈추고 혼잣말을 하고,
칠레 본토에서 온 사람들을 욕하고, 칠레로부터의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유전학적으로 폴리네시아 계통으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조상은 몽골리안 계통이고,
조악한 돌조각 기술을 가지고 잉카 제국의 후손이라고 우겼다.

현지 가이드와의 투어 비용 정산 관련 옥신각신

투어가 끝났으니 정산이 남았다.
현지 가이드는 항가 로아의 또 다른 ATM기 앞 주차장에 주차하면서 칠레 페소를 요구했다.

투어를 예약하면서 칠레 페소가 없어 달러로 정산해도 된다는 확답을 받았는데도,
막무가내로 칠레 페소를 요구했다.

ATM기에서 시험 삼아 소량을 인출했을 때 수수료가 20%로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어
칠레 페소로 정산할 수 없었다.

ATM기 수수료가 비싼 것은 내 사정이라는 것이다.
투어 출발 시간이 늦어 오롱고를 온전히 보지 못한 것을 가지고 가이드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예약시 WhatsApp으로 나눈 대화록을 보여주면사 페소가 아닌 달러로 지불하겠다고 했다.
현지 가이드는 수수료를 감안해야 한다면서 200불을 요구했지만, 175불로 결론을 냈다.

현지인과의 투어 협상시에는 미리 금액을 확정하고
투어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선의로 민도 진행하는 실수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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