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사막의 여명
03시 50분, 호텔 로비에서 04시 픽업을 맞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대기하던 중 다른 팀들이 이미 떠난 것을 확인했다.
이후 픽업 차량이 도착하지 않아 약간의 불안함을 느낀 후,
호텔 인포에 문의하고 다시 기다렸다.
04시 25분경 픽업하러 온 가이드를 따라 나일강변에 대기 중이던
공유버스에 탑승하여 아부심벨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캄캄한 사막을 질주하는 동안 06시 10분 경,
사막 동쪽 하늘이 주황빛과 분홍빛으로 물들며 여명이 서서히 밝아오는 장관을 연출했다.

30분이 지나자 해가 사막의 지평선 위로 솟아 올랐다.

아부심벨 신전(Abu Simbel Temple)
아부심벨은 수단과의 접경지인 이집트 남부 아스완의 남쪽 280 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정착지로,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건축 유산인 람세스 2세의 신전이 있는 역사적 명소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방법에는 항공, private taxi, hotel tour bus, 공중 버스 등
다양한 교통 수단을 통해 갈 수 있다.
출발전부터 카카오톡이나 왓츠앱으로 현지 투어업체로부터 견적도 받기도 했지만,
투숙하는 호텔에 투어를 신청하는 것이 안전하고 경제적이었다.

아부심벨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건설한 신전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기원전 13세기경 파라오 람세스 2세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그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전날 호텔 프론트에 신청한 투어 버스에 04시 30분에 탑승해
3시간 여 걸려 07시 40분에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했고, 관람시간이 1시간 40분 정도가 주어졌다.

호텔 투어 버스는 전날의 낡은 private taxi 보다는 훨씬 나았다.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군주이자 수많은 건축물들을 남긴 군주였다.
아부심벨 신전은 룩소르에 있는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과 함께,
람세스 2세의 왕성한 과시욕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람세스 2세는 이집트 남부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 지역에 여러 신전을 건설하였다.
당시 누비아는 이집트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지역이었다.

누비아인들을 빠르게 복속시키기 위해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로
이집트의 국력과 경제력을 과시하는 전략이 펼쳐졌다.
신전이 강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누비아인들은
이집트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는 도중 웅장한 아부심벨 대신전을 목격했을 것이다.

아부심벨 신전은 신왕국의 몰락과 함께
이집트 왕국의 힘이 약해지면서 점차 모래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기원전 6세기경에는 거상의 무릎까지 모래가 쌓여,
1813년까지 약 2,400년 동안 잊혀진 채 보존되었다.
이로 인해 도굴 피해는 있었으나,
구조적 훼손은 덜 되어 다른 신전에 비해 보존 상태가 양호한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도굴꾼들이 모래를 파내어 신전 내부를 일부 도굴한 흔적은 있지만,
전체적인 건축 구조와 기둥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다른 신전들이 기둥이나 건물 구조가 붕괴된 경우와 비교하면,
아부심벨 신전은 훨씬 양호한 보존 상태를 보여준다.
아부심벨 신전은 대신전(좌)과 소신전(우)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신전(Ramses II Temple)은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파라오 람세스 2세 본인을 위해 지어진 신전으로,
그의 신성한 위엄과 통치를 상징한다.

소신전(Nefertari Temple)은 사랑하는 왕비 네페르타리와 여신 하토르에게 헌정되어,
그들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기리는 역할을 한다.

1813년 스위스의 동양학자인 요한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아부 심벨을 발견한 후, 1817년 발굴이 되었다.
1960년대 아스완 하이댐 건설로 인한 나일강 범람 위험(수몰 위기)을 피하기 위해
유네스코 측의 경제적 지원 등으로, 아부심벨 신전은 대규모 이전 작업을 거쳤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세계 50여 개국의 국제적인 원조에,
2개 신전을 약 1,042개의 거대한 블록으로 자르고,
원래 위치보다 65m 높은 지면에서 북서쪽으로 200 m 떨어진 곳에서 다리 조립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적인 공학 기술과 정밀한 계획 아래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대신전 : 람세스 2세 신전(Ramses II Temple)
신전의 외관은 네 개의 거대한 람세스 2세 석상으로 장식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압도적인 인상을 준다.
아부심벨 신전은 태양신 라와 왕권의 신으로 여겨지는 람세스 2세를 동시에 숭배하는 성지이다.

호루스 신과 하토르 신의 작은 입상들이 줄지어 선 아부심벨 대신전 입구에는
약 20미터 높이의 네 개의 좌상이 좌우 2쌍 씩 앉아 있다.

이 좌상들은 모두 람세스 2세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각각 상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의상을 입어 왕의 권위와 국가 통합을 의미한다.

람세스 2세 좌상 중 왼쪽에서 두 번째 상은
신전이 완공된 몇 년 뒤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머리 부분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좌상 뒤쪽에 있는 거대한 파사드는 높이 33m, 폭 38m에 달하며
파사드 위쪽에는 스물두 마리의 개코원숭이가 새겨져 있다.
원숭이들은 양팔을 올려 태양을 찬양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입구 바로 위에는 큼직한 벽감이 하나 파여있고 그 안에는 태양신 라의 입상이 들어가 있다.
라는 왼손에는 깃털을, 오른손에는 정의와 질서의 여신 마아트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라의 몸에는 람세스 2세의 즉위명이기도 한 ‘우세르 마아트 라’가 새겨졌다.

입구를 통과하면 오시리스의 형상을 한 람세스 2세의 입상 여덟 개가 기둥처럼 배열된 방에 들어선다.
왼쪽에 위치한 조각상들은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백색 왕관을 착용하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조각상들은 상하이집트의 통합을 의미하는 이중관을 쓰고 있다.

이 방의 벽면에는 카데시 전투의 생생한 장면들을 조각한 상형문자와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람세스 2세는 카데시 전투의 승리를 선전하고,
자신의 통치와 군사적 위업을 기념하며 후세에 전하기 위해 자신의 위대함을 부각시켰다.

카데시 전투(Battle of Kadesh)는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와 벌인 대규모 전투로,
양측 모두 승리를 주장했지만 결국 평화 협정으로 마무리된 역사적 사건이다.



기둥의 방을 지나면, 네 개의 기둥이 천장을 떠받치는 상대적으로 작은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 방의 벽에는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내 네페르타리가 창조신 아문과 태양신 라와 함께
태양 방주를 타고 내세로 향하는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대신전의 지성소에는 총 네 개의 신상이 안치되어 있다.
좌측부터 프타, 이집트 신앙의 주신인 아문, 신격화된 람세스 2세, 라-호라크티의 순이다.
매년 2월 22일과 10월 22일, 해가 신전 지성소 내부로 직접 비추어져 신상들을 환하게 밝혀 위엄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원래는 람세스 2세의 즉위일인 2월 21일과 람세스 2세의 생일인 10월 21일이었는데,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기 위한 공사를 할 때,
오차가 발생하여 결국 원래 날짜보다 각각 하루 늦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어둠신인 프타의 상에는 이 날에도 빛이 비치지 않는다.
프타 신상은 아부심벨 대신전의 설계상, 태양의 직사광선이 닿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좌상의 벽면에는 상하 이집트를 통일하고,
카데시 전투나 누비아나 리비아 지방에서 일어난 전쟁들을 묘사한 그림도 새겼다.

전쟁 포로들이 묶여 있다.

대신전 좌상 아래에 새겨진 신성문자(히에로글리프)는 람세스 2세의 왕권과 신격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상형문자들은 람세스 2세의 칭호와 업적을 나타내며,
두 이집트를 통일한 정당한 통치자로서 신들로부터 받은 권위(신성한 통치)를 강조하고 있다.

소신전 : 하토르와 네페르타리 신전(Temple of Hathor and Nefertari)
소신전은 대신전에 대비해 작아 소신전이라 불리지만, 정식 명칭은 “하토르와 네페르타리의 신전”이다.
소신전은 사랑의 여신 하토르와 람세스 2세의 왕비 네페르타리에게 바쳐졌다.

이 신전은 아케나텐이 왕비 네페르티티를 위해 신전을 건설한 이후,
고대 이집트 역사상 두 번째로 왕비를 위해 지어진 사례다.

왕비를 위한 신전임에도 불구하고,
람세스 2세의 입상 네 개와 네페르타리의 입상 두 개가 세워져 있다.
두 인물의 입상 크기는 거의 동일하며,
그 아래에는 작은 크기의 왕자와 공주의 입상들이 함께 자리한다.

이렇게 파라오와 왕비의 입상을 거의 동일한 크기로 조각한 것은
고대 이집트 전통과 다른 독특한 특징이다.
그 만큼 람세스 2세가 네페르타리를 사랑했던 것이다.

소신전은 대신전의 축소 형태로, 여섯 개의 기둥이 천장을 받치는 방으로 연결된다.
이 기둥에는 사랑의 여신 하토르의 머리 모양이 새겨져 있다.

벽과 기둥에는 네페르타리 왕비가
라, 크눔, 콘수, 토트, 이시스, 마아트 등의 신들과 노니는 장면이 조각되어 있다.
또한 람세스 2세가 신들에게 향료를 바치는 모습도 함께 표현되어 있다.

람세스 2세는 소신전에도 카데시 전투 등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선전하기 위한 여러 전투 장면들이 새겼다.


여섯 개의 기둥 방을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세 개의 문이 있는 벽과 작은 방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주로 소의 형상을 한 하토르 여신에게
네페르타리 왕비가 공물을 바치며 신들을 찬미하는 내용의 벽화가 가득하다.

소신전 맨 안쪽에 위치한 작은 성소에는 원래 신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으며,
오직 하토르 여신과 합일되어 신격화된 네페르타리 왕비의 벽화만이 남아 있다.


엘레판틴 섬 일주
아부심벨에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아스완의 나일강 한가운데 떠있는
누비아인이 거주하는 엘레판틴 섬을 방문하기 위해 KFC 인근 페리 선착장으로 갔다.

편도 10 파운드를 지불하고 공중 페리를 탔다.
페리는 대중교통으로 수시로 섬과 아스완을 오간다.


나일강에는 보트와 펠루카가 분주히 강 물을 가르고 있었다.

페리를 탔는지도 모르게 금새 알록달록한 누비안 마을 선착장에 도착했다.
아스완의 엘레판틴 섬은 나일강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섬으로,
고대 이집트와 누비아 문명의 교차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엘레판틴 섬은 고대 이집트 초기부터 중요한 상업, 종교, 방어의 거점이었다.
섬에는 고대 이집트 신 크눔(코끼리 머리의 신)을 모신 신전이 위치해 있어,
종교적 의식과 제사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였다.

섬 전체에 걸쳐 고대 이집트의 유적과 건축물들이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 무역활동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엘레판틴 섬은 역사적 유산과 아름다운 나일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고대 신전, 나일로미터 등 유적을 둘러보며, 이집트 고대 문명의 한 단면을 경험할 수 있다.

아스완 나일강의 펠루카
누비아안 마을 골목의 곳곳을 둘러보면서도
그들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았다.
마감 시간에 쫓겨 나일로미터를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강변으로 나왔다.

일몰 시간이 되자 나일강 위에 보트와 펠루카들이 더욱 많아졌다.

엘레판틴의 나일로미터 선착장에서 페리 선착장까지 40 파운드에 흥정해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건넜다.

석양에 물든 나일강 위에서 펠루카를 타며,
고요한 물결과 붉게 물든 하늘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따스한 노을 빛과 시원한 강바람이 어우러진 그 순간은 잊지 못할 감동과 평온함을 선사했다.

아스완에서의 석양 아래 펠루카는 붉게 물든 하늘과 잔잔한 나일강이 어우러져
한적하면서도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다른 매력과 감동을 준다.
룩소르와 아스완 두 곳에서 펠루카 타기 체험을 해보기를 권한다.

아스완 나일강 야경
아스완 나일강변에 울긋불긋한 조명이 비추는 크루즈 선박들이 고요하게 정박해 있다.

선박들은 물결 위에 반사되는 다채로운 빛과 함께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며,
은은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 화려한 야경은 어둠 속에서도 엘레판팀 섬의 조명과 어울어져
한 폭의 그림처럼 감탄을 자아내며,
보는 이의 마음에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크루즈 선박들은 룩소르에서 출발하여 에드푸와 콤옴보를 거쳐 아스완까지 항해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많은 크루즈 선박들이 3박 4일의 여정을 끝내고 정박해 있다.

나일강의 야경을 감상하기에 최고의 전망을 제공하는 곳은 맥도널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