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경유 튀르키예, 그리스, 이집트 자유여행 11일차 : 룩소르(Luxor) 2일차

목차

룩소르 서안(West Bank) 여행

빛나는 아침 햇살 아래 호텔 테라스에서 스핑크스 길과 나일 강이 잘 보였다.

Private Taxi

룩소르 여행 2일차, 아침 일찍 죽은 자의 땅(Necropolis of Thebes),
룩소르 서안(West Bank, Imentet) 여행을 위해
호텔로 pick up하러 온 Private Taxi에 탑승했다.

Imentet는 이집트어로 서쪽을 의미하며,
태양이 서쪽으로 지는 것을 상징하여 사후 세계와 연결된다.
이집트의 중요한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들이 위치해 있는 신성한 곳이다.

오전에는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하트셉수트 장제전(Mortuary Temple of Hatshepsut),
멤논 거상(Colossus of Memnon), 하부 신전(Medinet Habou)을 거쳐 호텔로 복귀하고,
해질 녁에는 나일강에서 1시간 이상 Felucca를 승선하는 일정이다.

출국 전에 Whatsapp으로 룩소르 현지 Driver(Mohamed, +20-10-67100480)와 연락해 흥정 끝에 결정했었다.
West Bank, 일몰 시간 Nile Feluuca 및 Luxor~~Edfu~Kom Ombo~Aswan 호텔까지 riding에 USD 95로 예약했었다.
차량도 비교적 깨끗하고 매너도 좋았다.

여행 경로 상 카이로 일정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후루가다~룩소르(~에드푸~콤옴보)~아스완~카이로 순의 여행 경로로 하고,
룩소르~아스완 구간을 크루즈가 아닌 Private Taxi를 이용하는 선택을 했다.

크루즈는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번 타봤고, 아스완 > 룩소르가 메인 루트이기도 하며,
식음료나 베드버그 등의 위생상 문제가 있어 보여 크루즈가 아닌 Private Taxi를 이용했다.

고대 이집트 왕국 연대표

상하 이집트 통일 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고대 이집트 왕국의 연대표는 다음과 같다.
위키백과의 연대표를 기준으로 표로 정리하였다.

Luxor West Bank 입장료

외국 관광객의 경우 왕가의 계곡 750 파운드, 하트셉수트 장제전 440 파운드,
하부 신전 220 파운드으로 학생이나 내국인에 비해 비싸다.
왕가의 계곡 입장권(card only)의 경우 추가 비용이 없는 기본 무덤(3곳)을 방문할 때마다 입구에서 펀칭했다.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지 않거나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무덤의 경우
무덤 관리인이 박시시(tip)을 주면 입장을 허락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Luxor West Bank 고고학 유적지의 여타 입장료는 아래와 같다.
변경된 가격이 덧씌워져 있거나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주 변경되고 인상되는 듯하다.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

왕가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 시대(제18~제20 왕조)의 파라오들과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죽은 자의 땅인 룩소르 서안의 사막 지역에 위치하며,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화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잘 보여주는 장소다.

이집트 고왕국 시대 파라오들은 Saqqara와 Giza에 거대한 피라미드를 건설하여 자신의 무덤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외부에서 쉽게 눈에 띄었고,
내부에는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있어 도굴의 표적이 되었다.

신왕국 시대(기원전 16세기~기원전 11세기)에 이르러 파라오들은 도굴을 방지하고
무덤을 더욱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피라미드 대신 왕가의 계곡과 같은 비밀스러운 장소에 무덤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KV는 왕가의 계곡(Kings’ Valley) 을 의미하며, 숫자는 무덤이 발견된 순서에 따라 부여된다.
세티 1세(KV17), 투탕카멘(KV62), 람세스 5/6세(KV9) 무덤은 추가로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기본 무덤의 경우 통상 람세스 1세(KV16), 3세(KV11), 9세(KV6) 무덤을 추천하는데,
보통의 여행객이라면, 기본적인 무덤의 관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주차장에서 매표소 입구까지는 1인당 20파운드의 카트를 타고 왕복 이용했다.
왕가의 계곡 기본 입장료는 750파운드이고, 3개의 무덤을 기본으로 갈 수 있다.
입장료는 자주 바뀌는 듯 보였고, 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관광객들로 혼잡하고 햇볕이 예사롭지 않았다.

람세스 1세 무덤(KV16)

람세스 1세(BC1292년 ~ 1290년, 2년 재위)의 무덤(KV16)은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작은 무덤 중 하나로,
제19왕조를 창시한 파라오 람세스 1세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는 약 2년간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건축을 마칠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무덤은 간소한 설계를 가졌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초기 람세스 왕조의 장례 의식과 예술적 전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KV16은 단순한 구조로, 짧은 경사로와 한 개의 전실로 이루어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벽면에는 정교한 상형문자와 부조로 신화적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무덤은 신왕국 시대 초기 무덤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보여주며, 빠르게 완성된 것이 특징이다.

벽화는 사후세계로의 파라오의 여정을 묘사하며,
주로 밤의 서(Book of Gates)와 태양신 라의 재생을 강조한 장면으로 구성된다.

파라오의 신성함과 그의 영혼이 신들의 도움을 받아 사후세계에서 부활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벽화는 무덤의 크기를 넘어선 종교적 의미를 전달한다.

람세스 1세의 무덤은 크기가 작아 예술적 장식이 제한적이지만,
당시의 색상과 상형문자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무덤에 묘사된 신들의 모습과 태양의 여정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무덤의 크기와 관계없이 파라오의 권위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다.

KV16은 람세스 왕조 초기의 장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로 여겨진다.
무덤의 간소함은 짧은 재위 기간의 영향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성은 여전히 강력하다.

현대 연구자들에게 이 무덤은 람세스 왕조 초기에 사용된 건축과
종교적 전통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무덤의 벽화는 주로 사후세계(밤의 서, 지하세계의 서)에 기반하며,
파라오와 신들의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무덤은 복잡한 구조와 화려한 벽화로 유명하며, 사후세계로의 여정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잘 보존된 장식과 설계는 파라오의 권위와 사후세계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신념을 보여준다.
람세스 1세의 무덤은 고대 이집트 예술과 종교적 믿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람세스 3세 무덤(KV11)

람세스 3세(BC 1186 ~ 1155년까지 약 31년 재위)의 무덤(KV11)은
왕가의 계곡에 위치한 제20왕조의 가장 위대한 파라오 중 한 명인 람세스 3세를 위해 건설되었다.

그는 약 31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하며 신왕국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파라오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무덤은 규모가 크고, 사후세계와 관련된 정교한 벽화로 유명하다.

원래 다른 파라오를 위해 설계되었으나, 람세스 3세가 재위 중 이를 자신의 무덤으로 전환했다.

무덤은 직선으로 길게 이어진 구조로, 여러 복도와 전실, 열주실, 그리고 지성소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무덤 내부는 파라오의 사후세계 여정을 상징하는 다양한 공간들로 설계되었다.

람세스 3세의 무덤은 밤의 서(Book of Gates), 지하세계의 서(Book of the Underworld),
그리고 이집트 신화를 묘사한 벽화들로 장식되어 있다.

벽화에는 태양신 라가 밤의 세계를 통과하는 장면과, 오시리스와의 상징적인 교감이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묘사는 사후세계에서 파라오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담보하기 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무덤 벽화는 다채로운 색채와 정교한 상형문자, 신들의 묘사로 고대 이집트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벽화의 구성은 파라오의 권위를 강조하며, 태양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집트의 철학적 믿음을 반영한다.

벽면에는 람세스 3세가 신들로부터 보호받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그의 신성함을 강조한다.

람세스 3세의 무덤은 신왕국 시대 후기의 예술과 종교적 믿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잘 보존된 벽화와 설계는 당시 파라오의 위엄과 사후세계에 대한 이집트인들의 신념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무덤은 현대 학자들과 관광객들에게 고대 이집트의 장례 예술과
사후세계 철학을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람세스 9세 무덤(KV6)

람세스 9세(BC 1129년 ~ 1111년 약 18년 재위)의 무덤(KV6)은
왕가의 계곡에서 20왕조 말기에 건설된 무덤 중 하나로,
람세스 9세를 위한 장례 공간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약 18년으로 비교적 길었으며,
그에 따라 무덤의 규모와 장식도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당시 이집트의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한 일부 요소도 있다.

KV6는 왕가의 계곡에서 가장 넓은 직선형 무덤 중 하나로,
긴 복도와 여러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복도의 길이는 약 105m에 이르며, 장례 행렬을 묘사한 장면들이 복도를 따라 이어져 있다.
설계는 파라오의 위엄을 강조하며, 사후세계로 가는 영혼의 여정을 나타낸다.

람세스 9세의 무덤 벽화는 밤의 서(Book of Gates), 지하세계의 서(Book of the Underworld),
그리고 태양의 서(Book of the Day and Night)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주요 벽화는 태양신 라의 여정을 중심으로,
파라오가 신들과 함께 사후세계를 통과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이집트인의 믿음과 우주적 조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시각적 자료다.

KV6의 벽화는 다채로운 색채와 정교한 상형문자로 장식되어 있다.
태양신 라, 오시리스, 호루스 등 주요 신들이 부각되며,
파라오와 신들의 상호작용이 상세히 표현되었다.
특히, 복도에 걸쳐 이어지는 장례 행렬 장면은 당시 예술적 정교함과 파라오의 위엄을 동시에 보여준다.

람세스 9세의 무덤은 신왕국 시대 후기의 종교적 변화와 사회적 불안정을 반영하는 유적이다.
무덤의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구역이 완성되지 못한 점은 당시 이집트의 쇠퇴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무덤은 현대 연구자들에게 신왕국 시대 말기의 장례 예술과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왕가의 무덤 도굴

룩소르 서안의 왕가의 무덤들은 주로 절벽이나 계곡의 깊은 곳에 조성되어 보존이 용이했다.
이를 통해 왕들은 영생을 기원하며 화려한 부장품과 함께 안치되었다.
그러나 왕가의 무덤들은 고대부터 도굴의 표적이 되었다.

이집트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무덤 관리인이나 내부 관계자들이 내부 보물을 약탈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일부 파라오들은 이전 왕들의 무덤에서 보물을 가져와 자신의 무덤을 꾸미기도 했다.
이러한 도굴 행위는 신왕국 말기와 제3중간기에 더욱 심화되었다.

결국 대부분의 왕가 무덤은 도굴당해 원래의 부장품이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신왕국이 쇠퇴한 후, 왕가의 계곡은 점차 잊혀졌고, 무덤의 정확한 위치도 불분명해졌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서구 학자들이 탐사하면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많은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벽화와 유물들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부 탐사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무분별한 유물 반출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이집트 정부는 점차 문화유산 보호에 나서게 되었다.

왕가의 계곡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22년 하워드 카터의 투탕카멘 무덤 발견이었다.
이 무덤은 거의 도굴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어 엄청난 양의 부장품과 함께 발굴되었다.

투탕카멘의 무덤(KV62)은 람세스 6세(KV9) 무덤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석에 묻혀
도굴꾼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무덤 자체가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어
고대 도굴 시도가 있었음에도 내부 대부분의 부장품이 온전히 남아 있었다.

이후 왕가의 계곡은 중요한 고고학적 연구 대상이 되었고,
현재도 지속적인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관광과 보존을 병행하며 무덤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오늘날 왕가의 계곡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차장에 대기 중인 private taxi를 타고 하트셉수트 장제전으로 이동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룩소르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필수적인 명소로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의 종교, 정치, 예술이 결합된 놀라운 유산으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하트셉수트 장제전(Mortuary Temple of Hatshepsut)

카드로 표를 구매하고 20파운드의 카트를 타고 이동했다.
하트셉수트(Hatshepsut, BC 1479년 ~ 1458년 섭정 포함 약 22년 재위 )는
고대 이집트 역사에서 정치·군사·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강력하고 번영한 신왕조( Nieuwe Kingdom) 시대 18왕조의 파라오이자 여왕이다.

그녀는 투트모스 1세(Thutmose I)의 딸이자 투트모스 2세의 왕비였으며,
투트모스 2세의 사후 어린 투트모세 3세의 섭정자(계모)로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후에 스스로를 파라오로 선언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통치자(BC 1479년 ~ 1458년)로
평화로운 무역 확대(푼트, 소말리아)와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로 이집트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그녀의 업적을 기념하는 기념비적인 장소이다.
장제전은 여왕의 사후 세계로의 안전한 여정을 돕기 위한
장례 의식과 제의가 치러지는 신성한 공간이자,
여왕의 신성한 통치(정통성), 사후 숭배와 그녀의 업적을 기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태양신 아문라(Amun-Ra)를 비롯한 주요 신들에게 헌정되었으며,
하트셉수트가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임을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또 하트셉수트는 남성 파라오처럼 전통적인 복장(가짜 턱 수염과 머리 장식)을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는 자신의 신성함과 파라오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신들과의 관계를 부각하고,
그녀의 계승권에 도전했던 후계자(투트모스 3세)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절벽에 기대어 계단식으로 설계된 장제전은 고대 이집트 건축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이후 다른 파라오들의 신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트셉수트 사후, 그녀의 후계자였던 투트모스 3세는 그녀의 흔적과 업을 지우기 위해
신전의 조각과 벽화를 훼손하였고, 그녀의 이름을 지워지고 다른 파라오 이름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스핑크스는 사자의 몸에 하트셉수트의 얼굴을 묘사한 조각으로,
왕관과 수염을 통해 파라오로서의 남성 파라오와 동일한 신성한 권위를 강조했다.

이 스핑크스들은 장제전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배치되어
방문자들에게 하트셉수트의 신성한 통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장제전 1층 벽화는 푼트(Punt) 원정의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이집트와 푼트 사이의 무역을 통한 부와 번영을 강조했다.

벽화에는 푼트의 자연환경, 주민들, 그리고 이집트로 운송되는 귀중한 물품들(향나무, 금, 동물 등)이
상세히 그려져 하트셉수트의 업적을 기념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조각과 부조에 강렬한 색채를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를 통해 조각의 생동감과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3500년 전의 화려한 채색 벽화를 볼 수 있으므로 장제전의 1층을 관람해야 할 것 같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의 입구에 있는 하트셉수트의 입상들은 원래 매우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오시리스 신의 모습에서는 팔을 교차하여 손에 왕권의 상징(홀과 채찍)을 들고,
전형적인 미라 형태로 묘사되었다.

하트셉수트 장제전 입구에는 총 24개의 입상이 있었으며,
모두 하트셉수트를 묘사한 것이다.

그녀는 파라오의 위엄 있는 모습과 오시리스 신의 형태로 표현되어
신성한 통치자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입상들은 주로 제2층 테라스와 계단 양쪽에 대칭적으로 배치되어 장제전의 웅장함을 더했다.

상 이집트를 상징하는 연꽃과 하 이집트를 상징하는 파피루스를 묶어
상하 이집트의 통일을 표현하는 부조다.

두 인물은 풍요와 비옥함의 신 하피(Hapi)로,
상하 이집트의 조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하트셉수트가 통일된 국가를 다스리는 정당한 통치자임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하피(Hapi)는 고대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풍요와 범람을 상징하는 남신이지만,
풍만한 몸과 같은 여성적인 특징(가슴과 배)을 가지며,
이는 나일강이 가져오는 비옥함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나일강의 범람을 조절하고 이집트 전역에 풍요를 가져오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주로 파피루스(하 이집트)와 연꽃(상 이집트)와 함께 묘사된다.

멤논 거상(Colossus of Memnon)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은 원래 아멘호테프 3세(Amenhotep III, 기원전 1391~1353년경 재위) 의
장대한 장례 신전(모르투아리 템플)의 일부였다.
그러나 현재는 거대한 두 개의 석상만 남아 있고, 신전의 대부분은 사라진 상태다.
멤논의 거상이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 멤논(Memnon)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홍수와 범람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해당 신전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오직 멤논의 거상 만이 폐허 위에 남아 있다.

아멘호테프 3세의 장례 신전은 나일강 가까이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반복된 범람으로 인해 기초가 약화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전 구조물이 무너지고, 토사에 묻히거나 손상되었다.
고대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신전 대부분이 붕괴되었다.

무너진 신전의 석재가 다른 건축물에 재사용되었다.
특히 룩소르와 카르나크 신전, 인근 이슬람 건축물 등에 많은 석재가 옮겨졌다.
신왕국 시대 이후 이집트가 약화되면서 신전의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파라오들의 유산보다는 새로운 신전 건축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 거상들은 고대 이집트의 영광과 역사를 상징하는 살아있는 유산으로,
수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증거다.
멤논의 거상은 룩소르 서안(West Bank)의 투어 끝에 들르는 코스로 입장료는 없다.

멤논의 거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하부신전으로 이동했다.

하부 신전(Medinet Habou)

하부 신전(Medinet Habou)은 람세스 3세(Ramses III) 의 장제전으로,
룩소르 서안에 위치하며 신왕국 시대의 가장 중요한 신전 중 하나다.

이 신전은 파라오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장례 신전이자,
전쟁기념관, 행정 및 군사 중심지 역할도 했다.

하부 신전은 거대한 입구 탑문(Pylon), 중정(Courtyard), 기둥의 전당(Hypostyle Hall)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우 정교한 벽화와 부조가 남아 있다.

신전 입구에 들어서자 정교한 부조와 섬세한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신전 곳곳에서 람세스 3세의 신성한 권위와 영광이 드러난다.
특히, 신전 내부에는 해양 민족과의 전투 장면이 상세히 새겨져 있어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 신전은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니라, 람세스 3세 시기 국가 방어를 위한 요새 기능도 수행했다.
신전 주변에는 높은 벽이 둘러져 있었고, 내부에는 병사들의 거주지와 창고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부 신전은 룩소르 서안에서 가장 잘 보존된 신전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벽화와 부조가 남아 있다.

특히, 신전의 벽에는 람세스 3세의 제의 장면, 전쟁 승리 기록,
신들에게 공물을 바치는 장면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하부 신전은 해양 민족과의 전투를 기록한 유일한 유적 중 하나로,
신왕국 말기 이집트의 군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오늘날까지 많은 관광객과 연구자들이 방문하며,
고대 이집트 군사·종교·행정 시스템을 연구하는 주요 유적으로 평가받는다.

신전 내부는 넓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곳곳에 자리한 기둥과 조각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전은 고대 이집트 장례 의식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벽면에 새겨진 그림은 당시의 믿음과 예술적 표현을 그대로 전한다.
이 그림들은 람세스 3세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구조와 장식을 통해 파라오의 힘과 신앙이 분명하게 표현된다.
이 건축물은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위대함을 증명한다.

방문 후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하부 신전은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장소다.
이곳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으로 남는다.

Al Sahaby Lane Restaurant

포도넝쿨이 무성하게 우거진 잘 보존 된 벽화와 부조로 유명한
귀족 무덤인 세네페르(Sennefer) 무덤을 방문하고 싶었으나,
사막의 열기에 지치고 허기가 져 West Bank 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복귀했다.

가성비 있는 숙소로 한국인이 주로 이용하는 Nefertiti Hotel Luxor의 옥상에 있는
Al Sahaby Lane Restaurant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주변을 둘러보고 현지들이 많이 시키는 음식으로 주문했다.
룩소르 신전의 스핑크스 길, 나일강, 서안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룩소르 시내 산책

점심 식사후 정찰제 마트(Kheir Zaman Supermarket)와 길거리 과일 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했다.

룩소르 시내를 구경하고 날씨가 더워 더 룩소르 신전 주변을 둘러보고 호텔로 복귀하여
펠루카 픽업시간인 오후 4시까지 휴식을 취했다.

약속한 시간에 맞춰 private taxi가 와줬고, 10여분 달려 펠루카 선착장에 도착했다.

나일강 펠루카(Felucca)

초등학생 정도의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펠루카(Felucca)에 탑승했다.
펠루카는 전통적인 이집트 목조 범선으로,
독특한 돛과 얕은 선체 덕분에 나일강의 좁은 수로에서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가는 오후,
나일강의 고요한 물살 위로 전통 돛단배 펠루카(Felucca) 가 천천히 나아갔다.
부드러운 바람을 맞으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고 평온한 강 위의 세계가 펼쳐진다.

해질녁의 룩소르 나일강은 붉은 노을빛과 고요한 물결이 어우러져,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드는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펠루카(Felucca)를 타고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 위에서,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전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감동을 만끽했다.

이 펠루카 위에서 느끼는 바람과 잔잔한 물결은,
고대의 영광과 현대의 평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이었다.

모터 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돛단배는,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며 나일강 특유의 평온함을 선사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돛과 물 위로 반사되는 빛이 어우러지며,
일상의 번잡함이 사라지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줬다.

해질녘 나일강 위에 펼쳐지는 황금빛 노을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하고,
마음 깊은 곳에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배를 모는 선장이 간단한 차 한 잔을 권하며 여행자들과 따뜻한 교류를 나눈다.
현지인의 삶이 녹아든 순간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나일강의 매력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서 강물은 황금빛과 붉은 빛이 섞인 신비로운 색조로 물든다.
저 멀리 룩소르 신전의 실루엣이 부드럽게 드러나며,
고대 문명의 흔적이 일몰과 어우러져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태양이 서서히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면,
강 위에는 붉은빛과 보랏빛이 어우러진 황혼이 깔린다.
별빛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하는 순간,
펠루카 위에서의 일몰은 시간이 멈춘 듯한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아빠를 돕는 꼬마에게는 달러로 팁을 주고 하선했다.

펠루카에서 하선한 후 룩소르 신전 야경과
나일 강에 정박해있는 크루즈선을 구경하면서 룩소르의 야경을 즐겼다.

일몰 후 나일강 서안의 하늘은 시시각각,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조로 물들어가는 장관을 선사한다.

Aboudi Coffee Break

룩소르 신전 전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Aboudi Coffee Break에서 차 한잔을 했다.
옆에 있는 McDonald’s Luxor와 더불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룩소르 신전 너머로 나일강 건너편 서안까지 조명이 밝혀져,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룩소르 과일 & 채소 시장(Luxor Fruit & Vegetable Market)

룩소르 과일&채소 시장을 가는 길에 Luxor 기차역을 지났다.
Cairo에서 야간 열차를 타면 이 역을 거쳐 아스완으로 가는 기차가 서는 곳이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 사람, 마차 등이 뒤엉켜 쉽지 않다.

과일&야채 시장의 규모가 상당했다.
인근에 전통시장도 함게 구경하면 좋을 것 같다.

바나나, 사과, 석류 등을 샀다.

정찰제가 아니므로 흥정을 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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