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아침, 바투미의 마지막 산책
밤새 내리던 비가 잦아들었다.
전날 Spar에서 사둔 빵과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우중에도 우산을 챙겨 흑해 해안가 산책로와 Batumi Boulevard를 따라 걸었다.
Marriott Courtyard와 Hilton Batumi를 지나는데 비에 젖은 유리 건물들이 안개 속에 번졌다.

그 길 옆에는 May Park(호수공원)이 있었고,
그 안의 하얀 기둥 회랑 Colonnades 아래로는 사람 몇명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호수 위로 비가 점점 굵어지자,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구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환전과 빵, 그리고 1라리의 공유버스
방향을 틀어 유럽광장으로 가는 도중 환율이 좋아 보이는 환전소를 발견했다.
이틀 간 카즈베기에 머물 예정이므로 현금이 필요했다.
트빌리시에는 밤 늦게 도착할 예정이라 환전할 시간이 없을 것 같기도 해서 미리 환전해야 헸다.
달러 200불을 1달러당 ₾2.700에 환전했는데, 공항 환전(2.307) 보다 확실히 나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올드 타운 골목을 걷다가 빵굽는 냄새에 이끌려 베이커리에서
갓 구운 길쭉한 빵(로비아니)을 하나 사서 비를 맞으며 걸으면서 먹었다.
고소한 향과 따뜻한 김이 손끝을 덥혔다.
갓 구운 빵은 역시나 맛있었다.

비가 거세지자 11시 체크아웃에 맞춰 미니 시내 버스(₾1, 현금 가능)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젖은 옷을 널고, 짐을 정리해 캐리어를 맡기지 않고 체크아웃.
Bolt를 불러 ₾9.3에 Batumi Central Railway Station으로 이동했다.

기차역(화물역은 중심지 근처에 있다)은 중심지에서 약간 떨어진 외곽에 있었고 낡아 보였다.
기차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문을 걸어두고 놓고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담당자(+595 12 65 62)를 물어보아야 한다.

오후 기차(16:30)이므로 1층 기차역 안으로 들어가 2층 플랫폼으로 올라갈 때 통과하는
문으로 나가 유인 짐 보관소에 캐리어당 ₾5(대형/24시간 기준, 여권 제시,트빌리시 중앙역도 동일)에 맡기고
Bolt(₾4.4)를 불러 Batumi Bazaar로 갔다.
기차역 짐보관소와 시장(Batumi Bazaar) 구경
시장 안에는 각종 향신료, 치즈, 호두잼, 각종 고기 등이 빽빽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의 대화와 비 냄새가 섞여, 바투미의 일상이 오롯이 담긴 풍경이었다.
점심때라 시장 뒤편 가게에서 얼큰한 소고기 스튜를 맛있게 먹었다.


시장 건물내 가게들을 둘러본 후 길 건너 과일, 야채 시장을 구경했다.
1kg당 과일 가격(사과, 푸룬, 귤 등)이 ₾2.5로 숙박했던 관광지 물가에 비해 절반 가량 저렴했다.

노점상까지 둘러본 후 ARGO cable car를 타러 걸어서 다시 구시가지 방향으로 향하던 중,
비가 심해져 바투미 전망이 흐려 Cable Car를 타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우기라 바투미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비가 내렸으므로,
계획했던 Cable Car, 식물원, 마훈체티 폭포(Makhuntseti Waterfall) 등은 포기해야 했다.

ARGO cable car 앞 거리를 지나치면서 대규모 환전소 거리를 지났다.
바투미에 체류하는 동안 길거리 환전소를 수없이 보았지만,
이 거리 환전소 만큼 환율이 좋은 곳은 없었다.
한 집 건너 환전소로 경쟁이 치열해서인지 환율(₾2.705)이 제일 좋았다.
바투미를 방문하게 되면 이 거리에서 환전하는 것을 추천한다.
유럽광장의 카페, 잠시의 휴식

Batumi Bazaar에서 부터 구시가지까지 걸었으므로 피곤했다.
비도 피할 겸 시계탑 빌딩 근처의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이태리 남자 마냥 멋진 젊은 청년 두 명이 운영하는
Nord Special Espresso Bar였다.

아담한 인테리어에 손님은 열심히 컴퓨터 자판(카공족?)을 두드리는 청년 서너 명.
카페라테 두 잔을 주문했는데 가격은 각 ₾12 — 한국의 가격과 다름없었다.
카페도 작고 많지 않지만 대체로 조지아의 커피 가격은 비싼 편이다.
그래도 깊은 원두향이 비 오는 오후에 잘 어울렸다.
비가 잦아질 때까지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유심 구입과 트빌리시행 기차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 후 포세이돈 동상이 있는 넵튠분수 근처 Rustaveli Ave.의 Magti Office를 찾아갔다.
1주일을 조지아에 머물 예정으로 1주일 무제한 데이터 ₾20짜리 유심을 구입하고 예비폰으로 바로 개통.
인터넷 속도도 빠르고, 직원이 영어로 친절히 도와줬다.
해외 여행시 마다 느낀 점이지만 통신 요금이 우리 보다 확실히 저렴하다.

Bolt를 불러 다시 기차역으로 이동하니 오후 16시 10분.
비 갠 플랫폼에 조지아 국철(GR)의 빨간 2층 열차가 정차해 있었다.
기차표는 출국 직전에 조지아 철도 공식 사이트에서 08:00와 16:30 출발 중
16:30(5시간 25분 소요, 21:55분 트빌리시 도착)으로 2등석을 ₾36에 예매했다.
하루에 2편이고 차량이 많지 않아 미리 예매해야 한다.

예매한 좌석은 2등석, 2층 우측 창가(2열).
기차는 새 차량으로 내부가 깔끔했고, 전원 콘센트 등 기본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2층 좌석은 좌측 3열, 우측 2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간간히 마주 보는 좌석도 섞여 있었다.

열차는 흑해 연안(좌측 3열 좌석 창가쪽 풍경)을 따라 시속 110km로 달리다,
내륙 평원과 산악지대로 접어들면서 속도를 50km 전후로 줄였다.
창밖에는 숲이 우거진 평야가 펼쳐지고, 간간히 마을의 교회 첨탑이 보였다.
옛 중세 수도(쿠타이시, Kutaisi Airport)를 지나며 석양이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장시간 이동이었지만, 창밖 풍경이 평화로워 지루하지 않았다.
비오는 바투미에서 2박을 하느니 보단 트빌리시 가는 순방향이므로
쿠타이시에서 하루쯤 묵어가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트빌리시 도착, 역 호텔로
21:55, 기차는 정시에 트빌리시 중앙역(Tbilisi Central Railway Station)에 도착했다.
플랫폼을 곧장 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왼편으로 조금 돌아가면 엘리베이터(6층 호텔행)가 있다.
그것을 타고 올라가면 숙소 Hotel Tbilisi Central by Mgzavrebi.

밤 10시에 낯선 도시에 도착한 만큼,
역 바로 위에 호텔이 있다는 점은 안전과 접근성 면에서 최적이었다.
다만, 시설은 다소 낡았고, 침구 상태도 깔끔하진 않았지만,
하루 잠만 자고 일찍 이동하기엔 충분히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아쉬운 점은 화장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교통카드 구매 및 내일 준비
내일 아침 일찍 카즈베기로 가기 위해 디두베 버스 정류장으로 떠나야 하기에
역사 1층 우측 출구로 나와 약 70m 떨어진 Station Square 지하철역 매표 창구로 향했다.
승무원에게 교통카드(Metromoney, 보증금 ₾2)를 구입하고 ₾10 충전(₾1/1회, 10회 이용, 2인 사용 가능) 했다.
트빌리시의 모든 대중교통(지하철·중소대형 버스·케이블카)이 이 카드 한 장으로 이용 가능하다.

역 옆의 SPAR 마트에서 컵라면, 물, 과일 등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밤 11시, 짐을 간단히 정리한 뒤 다음 날의 지하철 이동 루트를 점검하며 침대에 누웠다.
창밖으로는 트빌리시의 네온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바투미에서 머무는 동안 흑해의 비는 끝내 그치지 않았지만,
그 빗속에서 걷던 바투미 거리와 카페의 향, 시장의 활기가 유난히 생생하게 남았다.
기차는 평야와 산악을 넘으며 조지아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고,
트빌리시에 도착했을 땐 낯선 도시의 불빛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오늘의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바투미의 여운과 트빌리시를 거쳐 Kazbegi로 향하는 기대가 교차한 하루였다.